<장지아: OMERTA-침묵의 계율>展에 출품된 작업은 ‘오줌'으로 수렴한다. ‘오줌'은 지린내, 즉 불결함으로 인식되어 늘 함께하면서도 우리의 소통구조 속에서 소외되어 있던 오줌을 전시장으로 끌어들인다. 이번 전시에서 장지아가 끌어들인 오줌은 크게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오줌을 싸다 라는) ‘행위로서의 오줌(<Standing up peeing>)' 과 (오줌이 다른 물질적 상태로의 변이되는 것을 보여주는) ‘변이로서의 오줌(<P-tree> <Fixed Object>)'이다. 이중 중요한 것은 ‘행위로서의 오줌'이다. 왜냐하면, ‘변이로서의 오줌'은 그 중심이‘오줌'에 놓여 있지만, ‘행위로서의 오줌'은 이번 전시에서 말하고자 했던 침묵의 계율의 작동 방식 자체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Standing up peeing>은 사진과 영상 형태로 제시된다. 먼저 사진을 살펴보면, 흑백으로 처리된 화면에 한 여자가 서서 오줌을 누고 있다. 어쩐지 낯선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벌거벗고 있으나 ‘당당하게' 보이고자 하는 그들의 동작이다. 그러나 이런 자세가 내뿜는 당당함과는 개별적으로 그들은 프레임이나 교묘한 자세를 취하며 익명으로 처리된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서서 오줌을 누고 있는 것인가? 많은 언론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처럼 그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인가? 그 답은 영상 작업에서 찾을 수 있다. 영상 작업에는 이 사진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전시장 가득 울리고 있는 ‘소리'가 있다. 카메라 셔터 소리, 포즈를 주문하는 사진가의 소리, 그리고 그것을 총괄하여 지휘하고 있는 작가의 목소리. 그들은 소리로만 존재한다. 소리는 들리고 있으나 그것의 근원지는 관객의 시각에는 포착되지 않는다. 단지 관객들은 그 ‘소리'의 지시에 몸을 움직이고 있는 모델의 모습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소리'의 의지에 따라 몸을 움직이고 있는 모델은 부자연스럽거나 혹은 쑥스러운 듯 몸을 움직이기도 하고, 때로는 웃음이 새어나오기도 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주문을 요구하는 ‘소리'는 점점 더 강해진다. 이것은 여자가 서서 오줌을 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한 역설적 표현으로 작용한다. 이것은 일견 그간 쌓여온 사회적 통념을 인정하는 모습이다. 즉 여자는 서서 오줌을 눌 수 없다는 것. 그렇다면 여자가 서서 오줌을 누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잘 짜여진 사진은 무엇이고, 그것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보여 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여기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모델과 소리의 관계이다
. 모델과 소리는 한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관객의 시선에는 사진과 마찬가지로 모델만 포착된다
). 모델은 소리에 절대적으로 복종할 수밖에 없다
. 그것이 아무리 무리한 요구라 할지라도 모델은 그것을 이행해야 한다
. 즉
, 모델은 보이지 않는 소리에 의해 쓰여진 텍스트이다
. 불편하고
, 쑥스럽고
, 무리한 것이지만 텍스트 이면에서 자신을 움직이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 그것들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
. ‘침묵의 계율
'을 깨고 있는 소리처럼 전시장 가득 울려 퍼지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침묵의 계율
'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
. 그러기에
<Standing up peeing>은
‘여자가 서서 오줌을 눌 수 있냐
'하는 가능성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것이 넓게는
‘사회
'를 그리고 좁게는
‘여성
'에게 작동하고 있는
‘금기
'가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를 날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