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원의 그로테스크 아트
17] 찬란히 빛나는 오줌의 연금술
Vol. 54 2007. 3. 15~3. 28
장지아의 네 번째 개인전
'오메르타
(OMERTA)-침묵의 계율
'展은 여성에게 적용되는 금기를 이야기하되, 오줌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금기의 본질에 접근해간다. 전시 제목인 ‘오메르타'란 마피아들이 사용하는 은어로, ‘조직의 비밀을 절대로 발설해서는 안 된다'라는 엄격한 내부 규율, 즉 침묵의 맹세를 뜻한다고 한다. 그러나 장지아는 이번 전시에서 그런 금기의 제약을 노골적으로 맞받아친다.
어떤 고깃집에 갔다가
, 화장실 벽에 붙은 경고문이 눈에 띄었다
. “여자분들은 볼일을 보고 나면 변기 좌석을 올려 주세요
.” 남녀공용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면 변기 좌석을 내려달라
”는 글은 종종 봤지만
, 이런 내용은 처음이었다
. 알고 보니 고객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남자 고객들이 화장실에 갈 때마다 변기 좌석을 올리는 걸 귀찮아할까 우려한
, 고깃집 주인의 세심한 배려
(?)가 담긴 글이었다
. 어쨌거나 변기 좌석은 내려놓으라고 있는 것이지
, 변기 뚜껑처럼 올려두라고 만든 게 아니다
.
공용 화장실에서 변기 좌석을 내리는 일은
, 남녀 차이가 곧
‘차별
'로 이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남자라는 이유로 불편한 극히 드문 사례일 뿐이다
. 만약 변기 좌석이 여성만을 위한 역차별적 구조라며 불평하는 남자가 있다면
, 이런 말을 들려주고 싶다
. 당신이 변기 좌석을 올리면서 겪는 불편함은
, 단지 당신과 다른 성을 지녔다는 이유로 배척당하는 이들이 겪는 차별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일 것이라고
. 그러니 하루에 한 번만이라도 변기 좌석을 올리면서
, 그들의 불편함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 보라고 말이다
. 하지만 차이 아닌 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는 쉽게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 그 차별의 양상이 일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수록 더하다
. 결국 차별을 자각하는 것은 자유지만
,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
'은 은밀한 금기가 된다
.
장지아가 건드리는 금기는 사진 연작
‘Standing up peeing'에서
, ‘서서 오줌 누는 여자
'의 모습으로 구체화된다
. 작가는 알몸으로 오줌 누는 여자의 허벅지를 포스터 전면에 내세우는가하면
, 다양한 자세로 서서 오줌 누는 여자들의 흑백 사진을 지하 전시장 벽에 줄지어 세웠다
. 사진에는 힘찬 오줌줄기가 물총처럼 발사되는 모습이나
, 혹은 힘없이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모습이 등장한다
.
뿐만 아니라 촬영 과정을 담은 영상에서는 작가
, 사진가
, 그리고 얼굴이 잘려나간 익명의 모델이 나누는 대화가 흘러나온다
. 대화 사이에 끅
, 끅
, 끅
, 끅
,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기묘한 소리가 전시장 가득 울려 퍼진다
. 사진가
, 모델
, 작가는 그들만의 공감대 안에서 스스럼없이 흥겹지만
, 관람자의 입장에서는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 피상적으로 해석한다면
“그래서 지금
, 여자도 서서 오줌 눌 권리를 주장하자는 거요
?” 하고 오해할 법도 하다
.
그러나 장지아의 작업에 담긴 메시지를 “여자는 서서 오줌 누면 안 되나요?”라는 도발적인 항의로 축약하면 곤란해진다. 흘러내린 오줌에 옷이 젖을 게 뻔한데, 굳이 일어서서 오줌을 누고 싶은 여자는 없기 때문이다. 작가 역시 이를 모를 리 없다. 사실 장지아의 오줌 퍼포먼스는, 여성이 남성 위주의 규율로 가득한 세상에 적응하려 할 때 일어나는 불편함을 환기시키는 행위에 가깝다. 좀 더 풀어서 말하면 ‘여자로 살면서 겪는 불편함에 대해 말하기'를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일 따름이다.
작가가 환기시키는 불편함은
, 남성들이 변기 좌석을 들었다가 원위치할 때 느끼는 소소한 불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
. 다소 생뚱맞게 보이는 이 퍼포먼스를 통해
, 장지아는 사회 전반에서 암묵적인 금기로 작용하는 행동
, 즉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말하기
'를 집요하게 시도한다
.
말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분명히 있다
. 그러나 자신을 얽매는 것이 무엇인지 말로 토해낼 때
, 적어도 발화자의 내면은 비로소 자신을 억압하던 그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
. 통제할 수 없는 두려운 존재를
, ‘다룰 수 있는
' 말이라는 대상으로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 작가의 이번 작업과 맥락은 다소 다르지만
, 성폭력 피해자들이
‘생존자 말하기 대회
'를 여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 변화를 원하는 사람은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을 억누르는
‘오메르타
'를 깬다
. 그 죽음이 물리적인 것이든
, 아니면 비유적인 것이든 간에 말이다
.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오줌 누는 여자들의 사진보다 흥미로운 것은
, 오줌이 어떻게 미학적인 재료로 변용되는지에 대한 실험이다
. 이 실험은 엄숙하지만
, 그 밑바탕에는 유쾌함을 깔고 있다
. 가까이 코를 들이밀면 슬쩍 풍겨나는 짭조름한 지린내를 제외한다면
, 불결한 오줌에서 예술작품으로 승화한 이 작품들은 그 원 모습이 어떤 것이었든 간에 충분히 아름답다
. 심지어 오줌과 정착액을 섞어 인화한 까닭에 옅은 자주색으로 변한 사진에서조차
, 빈티지 사진 같은 아우라가 생겨난다
. 오줌은
‘냄새나는 배설물
'에서 어느새 즐거운 놀잇감이 된다
. 단
, 이 놀이를 불편한 마음으로 보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에게만 말이다
.
예컨대 수족관을 닮은 유리 상자 속에 오줌으로 코팅한 오브제를 가득 채워 넣은
‘Fixation Box'는 하얗게 얼어붙은 소금 바다 같기도 하고
, 쇠락한 유적지 풍경 같기도 하다
. 장지아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오줌을 끓여 용해된 소금을 뭉쳐 오브제에 입히고
, 이를 다시 오줌에 넣어 오브제 표면에 반짝이는 소금 결정을 부착시켰다
. 완성된 작품은 손상을 막기 위해 표면에 무광 자동차 도료로 다시 코팅했다
. 관람자들은 유리 상자에 뚫린 구멍을 통해 놀잇감의 위치를 옮겨가며 놀 수 있다
.
'P-tree'(부분
). 불결한 것으로 폄하되어온 오줌이 콩을 키우는 양분이 된다
.
무엇보다 이번 전시의 백미는 높이
3미터에 가까운 거대한 오줌나무
‘P-tree'다
. 나무에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동그란 유리공 안에는 작가의 오줌이 담겨 있다
. 가장 높은 곳에 매달린
, 가장 오래된 열매는 핏빛에 가까운 주황색이지만
, 나무의 하단부로 내려갈수록 맑고 투명한 상태의 오줌이 담겼다
. 이 열매들은 투명한 고무관으로 연결되어 있고
, 나무의 정면에는 정화된 오줌과 물을 빨아들이는 콩이 자란다
. 더러운 노폐물에 지나지 않았던 오줌이 생명의 싹을 틔우는 양분으로 변신하고
, 황금빛 열매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이 작품은
‘오줌의 연금술
'이라 부를만하다
. 서서 오줌 싸는 여자들의 사진보다도 오히려 이 작품이 마음을 끄는 건
,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더러운 것
, 버려진 것에서 희망을 찾아내는 작가의 긍정적인 목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
고경원
_ 자유기고가
aponia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