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노트
나의 여섯 번째 개인전
I confess는 고문의 역사속의 장면들을 속죄의 방식으로 연결시킨 작업들이다
.
전시장에 전시되는 모든 고문도구와 사진
, 설치작업들은 역사속의 고문의 현장이지만 그 모든 고문이 스스로를 향해 있는 형벌이다
.
개인으로서의 죄의 고백과 사회적 관계안에서의 죄의 자백은 개인적 금기와 사회적 터부 사이를 넘나들고 있다
.
타인에 의한 강제적인 고통은 폭력이나
. 나의작업에 드러나는 자발적 고통의 이면은 쾌락의 영역안에 있을 가능성에 대해 열어두고자 한다
. 자학이라는 가학적 공격성이 자신에게 행해졌을 때 그 고통이 욕구로 전환될 가능성 말이다
.
현대인의 죄의식은 신경증으로 유발된다
. 라캉은 광적 욕망에 사로잡혀있는 주체가 욕망에 대한 과잉집착에서 신경증이 시작된다고 한다
. 스트레스와 욕망의 억압이 있는 우리는 누구나 병적 증후가 있는 고통 유발자들이다
.
이번 기획에 최초의 관심은 카프카의
‘유형지에서
’에서 등장하는 장교의 기계에 대한 찬미 때문이었다
. 재판관이면서 동시에 처형관인 장교는 죄수의 처형과정을 통해서 기계의 우수하고 완벽한 성능을 과시한다
. 처형기계는
12시간에 걸쳐 죄수의 몸에 그가 위반한 죄목을 바늘로 기록하고 몸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내도록 고안된 장치이다
.
한낱 낡아빠진 기계를 맹신해가며 온몸이 갈려 나가도록 자신이 만든 제도를 지켜내는 방법은 그의 파시즘적인 태도보다도 너무나 복합적인 욕망에 대한 갈망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 그 이유가 궁금했다
.
고문의 방법은 그 문화와 역사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진다
. 고문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공포와 고통을 전달할 방법에서 심미성을 추구하는 것들이 항상 함께 있어왔으며 문화가 발달한 시대에 극에 달하게 된다
. 합리적이거나 실용적인 목적만이 아닌 물질적
, 정신적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
가장 추하고 폭력적인 것들을 우리는 미화시키고 그것에 아름다움을 논하고 있는 것일까
?
이것은 단순히 고통을 고통으로 폭력을 폭력으로만 느끼기에는 복잡한 경로로 감성들을 확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
죽음 앞에서 원초적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대상이지만 어느 면에선 욕망의 주체가 되어
마치 제의적 퍼포먼스의 희생양처럼 고통 속에서 오히려 충만한 새로운 에너지가 샘솟게 되는 흥분된 정점을 동시에 갖게 된다
.
역사 이래 고통의 형태
, 고통의 원인은 달랐어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언제나 고통은 존재해 왔다
. 마치 우리가 실존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증표처럼
...
I confess의 작품들은 역사 속 현장을 재현하는 작업이 아니다
.
그렇게 보기에는 모든 작업들이 사실과는 조금씩 비틀어져있다
.
어떤 작업은 치욕스런 상황 속에 있는 그녀를 성적주체로 다루고 있고 어떤 작업은 그들의 행위의 목적이 고통에서 쾌락으로 넘어가고 있는 듯 보인다
. 어떤 것은 필요이상 너무 시각적으로 너무 아름답거나 또 어떤 것은 너무나 복잡한 경로를 거쳐야만 죽을 수 있다
.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것
, 아름답지만 고통의 경계위에 있는 것
, 고통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것
...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거나 죽여야 하는 최종의 목적 외에 필요이상의 과잉기능을 갖추고 있는 이것들은 심미적 역할뿐 아니라 고통의 대상들과 지켜보는 우리에게 미학적 전의를 일으킨다
.
고통을 통해 우리의 실존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현실과 작가의 환상을 넘나들며 광기어린 삶의 이면을 드러내고자 한다.
작업 전체를 묶는 싱글채널 비디오 작업 하나와 네 개의 사진작업, 6개의 소품, 2개의 설치작업으로 구성된다.